F1 Bernie Ecclestone 소개 Formula One

버니 에클레스턴 (Bernie Ecclestone)


버나드 '버니' 에클레스턴은 포뮬러 원 매니지먼트( FOM)와 포뮬러 원 협회(FOA) 의 회장 및 최고 경영자를 담당하고 있다.
에클레스턴은 매우 성공한 비즈니스맨이며 포뮬러원의 글로벌적인 성공에 기여를 많이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70년대 텔레비전 방영권 협상을 성사시켰으며 여러 F1 주주들간의 뜨거운 논쟁에도 불구하고 그 협정을 유지시켰다.

그리고 이는 스포츠의 기본적인 힘이 되었다.


1930년 10월 28일생인 버니 에클레스턴은 16세에 학교를 떠났으며 단기간 동안 가스회사에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곧 사업가의 기량과 모터사이클에 대한 엄청난 관심을 결합하여 모터사이클의 부품을 거래하는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에클레스턴은  그의 비즈니스 파트너를 인수하여 영국에서 가장 큰 모터사이클 딜러로  사업을 확장시켰다.

1949년, 그는 모터바이크 레이싱에서 자동차로 전환했고, 1951년 500cc  포뮬러 3 시리즈에서 쿠퍼 MkV를 획득했지만 브랜즈 해치에서 큰 사고를 겪고 난 후 사업에 전념했다.

그리고, 그 사업은 위켄드 카 옥션 펌(나중에 브리티쉬 카 옥션에 팔았다), 대출융자와 부동산으로 점차 확장되어졌다.

1957년, 버니 에클레스턴은 영국 레이싱 드라이버인 스튜어트 루이 에반스의 메니져 역할로 다시금 스포츠계에 복귀했다.

그리고  F1 코노트 팀을 매수하여 루이 에반스, 로이 살바도리, 아치 스캇 브라운과 아이버 부엡을 서포트했다.

1958년, 모나코에서 열렸던 예선에서 에클레스턴은 차 하나라도 예선 통과시키려고 했지만 성공적이지 못했다.
 같은 해 말에 모나코 GP에서 반월을 운전하던 스튜어트 루이 에반스가 앤진폭발로 인해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6일 후 자신도 부상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에클레스턴은 많이 놀랜듯했고 레이싱으부터 다시 리타이어했다.

그 후 에클레스턴은 살바도리와의 친분으로 다시 레이싱으로 복귀했고 요헨 린트의 메니져와 린트의 1970 로터스 포뮬러 2 팀의 부분적인 소유주가 되었다.

다른 드라이버는 그레이엄 힐이었다.
1970 몬차에서 충돌사고로 생명을 잃은 요헨 린트는 그 당시 챔피언십을 우승할 수 있을 만큼의 점수를 이미 보유하고 있었다.
린트의 죽음 후, 버니 에클레스턴은 다시 스포츠계에서 사라졌다가 1972년 초, 그는 복귀했고 론 토라낙크로부터 브라밤 팀을 매수하여 F1의 지지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프랭크 윌리엄스, 콜린 체프먼, 테디 메이어, 켄 티렐과 멕스 모슬리와 함께 포뮬러 원 컨스트럭터즈 협회(FOCA)를 창립하였다.
브라밤에서 에클레스턴은 컴퍼니의 모든 저력을 레이싱에 쏟아 부어야 한다는 결정을 내린 굉장히 강한 리더였다.

그리고 그는 1974년과 1975년, 카를로스 로이테만과 함께 몇몇의 레이스를 이겼고, 또한 1975년도에 몇몇의 팀 오너들과 함께 힘을 모아 FIA를 상대로 새로운 출전 시스템과 모든 팀에 지급되는 출장 사례금을 위해 전쟁을 치렀다.

1976년, 팀들은 이 전쟁에서 이겼고 에클레스턴은 텔레비전 방영권 판매에 관해 다시 싸움을 시작했다.
브라밤의 1976년과 1977년도는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다.

신뢰를 잃은 팀은 필드의 뒤에 남게 되었지만 1978년 니키 라우다가 2번의 레이스를 우승하기도 했다.


1978년 1월, 에클레스턴은 FOCA의 최고 경영자가 되었고 멕스 모슬리를 그의 법률고문으로 두었다.

그리고 그들은 FIA의 새로운 계열사인 FISA와의 싸움을 시작하였다.

스포츠 상업의 통제를 위한 싸움은 1981년 3월 콘코드 협정이 FOCA에게 텔레비전 계약을 협상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을 때까지 지속되었고 이러한 목적을 위해 에클레스턴은 포뮬러 원 프로모션과 협회(FOPA)를 창립했다.

47%의 텔레비전 수입을 팀에게, 30%는 FIA에게, 그리고 23%는 FOPA(에클레스턴 본인)에게 주기로 한 대신에 FOPA측에서 상금을 걸었다.

버니 에클레스턴에게 위험하지 않았을 법한 이 거래는 알고 보면 사실 굉장한 위험을 가지고 있었다. 

이 거래를 통해 그의 탁월한 협상력, 또한 차후의 F1 인기 상승, 글로벌한 그의 마케팅 전략과 사업의 천재성이 널리 알려졌다. 
브라질 사람인 넬슨 피켓은 1978년 브라밤에 소속되었고 에클레스턴 또한 그의 팀과 오랫동안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다.

비록 1980년에 앨런 존스와 아슬아슬한 결투 끝에 패하긴 했지만 1981년과 1983년에 타이틀을 거머쥘 수 있었다.
1987년 말 시즌, 에클레스턴은 F1운영에 더욱 더 전념하기 위해 브라밤을 팔았다.

그리고 1971년도에 약 12만 달러의 가치를 가지고 있었던 브라밤을 500만 달러이상을 받고 스위스 사업가인 호아킴 루티에게 넘겼다.
 1995년, FIA는 14년 동안F1의 상업적 권리를 포뮬러 원 매니지먼트에게 넘겨주는 대신에 에클레스턴으로부터 연간 결제를 받기로 결정하였다.

권리 상실한 것을 알아차린 F1팀들은 분노했고 멕라렌, 윌리엄스와 티렐은 1997년 콘코드 협정에 싸인 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나머지 8팀들은 자신들의 뜻을 굽혔다.

결국 팀과는 10년 계약, 그리고 FIA와 15년 계약을 채결했다.
  버니 에클레스턴은 상당한 양의 개인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 그는 투자를 다양화시켜 부분의 주식을 F1에 대한 권리가 있는 회사에 팔았음에도 불구하고F1의 많은 부분을 주도하고 있다.
  때로는 에클레스턴의 좋지 않은 논평이 언론으로 인해 과장되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가 언론사들을 대할 때 가끔은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여도 될 것이다.

트랙 오너와 기획사와 협상을 할 때 굉장히 강한 입장을 밝혔던 것처럼.
 에클레스턴의 이야기는 는 여전히 굉장하다.

평범한 배경을 가진 남자가 지능, 상술, 비전과 많은 노력으로 자신을 자만과 권력으로 가득한 플레이어들을 끌어드리기로 악명 높은 스포츠의 중심에 자리 잡는다는 것은 대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글 보기 - AfterABC F1 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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