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GP 대회 유치 효과 Formula One

F1 사업과 직결된 통찰력, 정보, 커뮤니티를 원천으로 한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의 체널(www.http://blogs.afterabc.co.kr)의 미디어 센터에서 F1 GP 대회 유치 효과를 산정하여 봅니다...,  2010년 전남 영암군에 F1 코리아 그랑프리의 무대를 준비 중이다. F1 특별법이 몇 번에 걸쳐 무산되면서 경기를 치르는데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었지만....

F전남도측과 KAVO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F1 특별법이 통과 되면서 2007년 경기장 착공에 들어가 금년 후반기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경기장의 총 면적은 56만평에 이르며 트랙의 길이는 5,684Km이고 이는 아시아 경기장 중 가장 긴 트랙이며 전 세계 서킷을 통틀어도 이탈리아 서킷에 이어 2번째에 해당하는 규모이다.

전남 서킷의 가장 큰 특징은 서킷을 막아 숏 코스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설계 과정에서 다목적 이중 구조를 채택하였고 F1 표준 규격의 2개 코스를 결합한 것이 세계 최초이며 총 17개의 서킷 가운데 2개의 서킷을 반시계방향으로 설정하여 드라이버에게 도전 정신을 갖게 하도록 설계하였다.

또한 전남 경기장은 12만명의 관람객을 수용할 수 있도록 좌석과 자연관람석을 만들어 놓았으며 F1의 피트 빌딩, 컨트롤 타워, 미디어 센터, F1팀 빌딩, 주차장, 위락시설 등 동양권 최고의 자동차 경주 경기장으로 만들어 진다(www. f1korea.go.kr)

다음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체육과학연구원에서 분석한 효과 분석이다.

2010-06-25 23;45;09.JPG


1) Formula one 이론적 배경

아직까지 국내의 자동차경주라는 영역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생소한 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동차를 스포츠의 한 도구보다는 교통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의 경우에 이미 F1등 자동차경주대회는 가장 큰 스포츠 이벤트 중 하나이며, 가장 관중들이 열광하는 스포츠 종목이다. 일반 대중들이 타고 다니는 차를 부분 또는 완전 개조하여 시합을 하기도 하고 F1 대회만을 위한 포뮬러(Formula)를 만들어 스피드를 온로드와 오프로드에서 시합을 하기도 한다.

2) 세계 자동차 경주의 역사

1886년 독일의 벤츠에서 최고시속 16Km로 달리는 자동차를 개발하면서 자동차의 시대가 열렸지만 자동차 경주는 1894년 프랑스 파리 ~ 루앙에서 세계 최초로 열렸다.

이 최초의 경주는 레이스라기보다는 자동차 캠패인의 성격을 가진 것으로서 다음 해에 이어 열엇던 파리 ~ 보로도 왕복 레이스를 진짜 자동차 경주로 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찌됐던 파리 ~ 루앙경주를 최초의 모터스포츠로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전영선 2000).

이 경주는 자동차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주체된 것이였지만, 사람들은 이미 자동차의 성능에 반해 자동차에 대한 관심은 높아져만 갔다.

이에 르 쁘띠(Le Petit)저널은 다음해 총 22대의 자동차가 출전한 파리 ~ 보로경주를 열었고 르 쁘띠 저널을 중심으로 신문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계 최초 자동차 클럽을 조직하였다. 그 후 각국의 수도를 연결하는 레이스들과 도시 간을 연결하는 레이스들이 열리면서 시합의 규정이 생겨났고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 경주전용 서킷이 생기며 유럽에선 자동차경주가 하나의 스포츠로 자리매김을 해나갔다.

자동차 경기는 1885년대 말에서 1900년대 초까지 미국,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영국 등을 포함한 국가들이 나름대로의 자동차 경기를 개최하다가, 유럽에서 자국 내 경기가 활성화되자 모터 스포츠 국제교류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1904년 6월 20일 13개국이 모여 독일 함부르크에서 자동차 단체 국제기구창설을 위한 모임을 열게 되었고 이모임에서 국제자동차 공인 클럽협회(AIACR - Association International Des Automobile Clubs Reconnus) 가 만들어지게 된다(손성욱, 2006).

이 모임을 주축으로 상호 교류를 하며 각국에서 경기를 펼치기 시작했다. 1900년에는 미국의 신문재벌이었던 제임스 고든 베네트(James gordon benet)에 의해 1905년까지 그랑프리의 시조라 할 수 있는 고든 레이스를 열어 제6회에 걸쳐 각국의 자동차클럽들이 출전하였는데 1회에는 출전한 자동차가 5대 뿐이었고 사고가 연달아 일어나 정비사, 관객, 드라이버 등 총 4명이 목숨을 잃고 파리시장의 레이스 금지령으로 도시 간 레이스 시대가 막을 내리고 서킷 레이스의 막이 올랐다.

1906년에는 프랑스 모터 클럽에 의해 합리적인 규정을 갖춘 '그랑프리' 레이스를 열었다. 경기 규칙으로는 1,000kg이하, 한 메이커에서 3대 이하 출전, 차 한대당 드라이버 2명, 연료소비량은 100km당 30리터 이하 등이었다.

1907년에는 열정적인 성격과 스피드를 좋아하는 국민성을 가진 이탈리아가 두각을 나타냈고 1,000kg이하라는 차의 무게규정이 없어지고 100km당 휘발유 30리터 이하라는 연료 소모규정만 살렸다.

또한 1907년에는 동양과 서양을 잇고 가장 어렵고 험난한 코스를 달리는 16,000km의 자동차경주가 열리며 또 하나의 자동차경주의 큰 획을 그었다(전영선, 2000)

1946년 AIACR 협회는 국제자동차연맹 FIA(federation International de L'Automobile) 명칭을 바꾸었으며 오늘날까지 이 명칭을 사용하고 있고 FIA는 규격의 자동차를 이용하여 경주를 행하는 F1(formula one)이라는 명칭을 규정짓고, 1950년 5월 13일 영국 실버스통에서 최초의 FIA F1 월드 챔피언쉽인 British GP를 개최하게 된다(김주호, 2005)

2010년 6월 26일, 한국과 우루과이아 16강 경기에 한국 승리를 기원하면서.....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