챨리 화이팅(Charlie Whiting) Formula One

챨리 화이팅(Charlie Whiting) FIA 포뮬러원의 경기 감독이자 안전 대표이며 고정 스타터와 F1 기술부의 대표이다.

charlie-whiting-2.jpg그는 F1 그랑프리를 실행 계획하고 파크 페르메(Parc ferme - 예선이나 레이스가 끝나고 머신을 보관하는 장소)에서 경기전에 차들을 점검하며, FIA의 집행과 경기마다 신호들을 조종한다.

챨리 화이팅(Charlie Whiting) 번째 직업은 그의 형인 (Nick) 보조하는 일이었다. 여기서 그가 하던 일은 경주 차량을 영국의 브랜즈 해치(Brands Hatch)경기장 근처에 준비하는 일이었다.

1970년 중반에는 형제가 1976년도에 브리티시 F5000에서 뛰게 된다. 1977년 시즌에는 실버스톤(Silverstone)옆에 있는 이스턴 네스턴(Easton Neston) 헤스케스 레이싱(Hesketh Racing) 에 입단하게 되었다. 팀이 망하고 나서야 그는 웨이브리지(Weybridge)에 있는 버니 에클레스턴(Bernie Ecclestone) 브라밤(Brabham)팀에 입단한다.

이곳에서 그는 10년 동안 일했으며, 닐슨 피케(Nelson Piquet)를 위해 1981년과 1983년에 월드 챔피언쉽 수석 기술자가 된다. 그리고 그 후에도 그는 수석 정비사가 되었고, 경주 자동차 부품 샵을 브랜즈 해치 서킷(Brands Hatch Circuit) 근처에 운영하기도 했다.

charlie-whiting-1.jpg1988년에 그는 FIA 포뮬러원의 기술 대표가 되었고 1977년에는 FIA 경기 감독과 안전 대표가 되었다.

그의 형은 1975년부터 웨스트 킹스다운(West Kingsdown) A20 입구에서 1마일 정도 떨어진 위치에 스토어(Nick's Store) "All Car Equipe"를 운영하였으나 1990년도에 살해 당했다.

챨리 화이팅(Charlie Whiting)은 미국 그랑프리 도중에 미쉐린(Michelin)에서 온 타이어들이 모두 안전하지 않다는 판정으로 논란에 휩싸이게 되었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7개의 포뮬러원 팀들이 가지고 있는 안전하지 않은 타이어 교체를 할 능력이 없어서 챨리 화이팅(Charlie Whiting)에게 인디아나폴리스 모터 스피드웨이(Indianapolis Motor Speedway) 13구역에서 시케인(Chicane - 자동차 속도을 줄이게 하기 위한 이중 급커브길) 설치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다면 지금 현재 트랙에서도 안전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다른 팀들에게는 너무도 불공평한것이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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