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라렌(McLaren): 맥라렌(McLaren)은 1966년부터 지속적으로 F1에 참가하였다. 처음에만 페라리(Ferrari)에게 밀려 2등을 했을 뿐 1884년부터 1991년까지 유일하게 F1을 독점하게 된다. 이 팀은 86년, 87년 챔피언십을 우승하였고 드라이버 챔피언십은 87년만 빼고 모두 우승했다.
그때 F1은 언제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있었던 맥라렌(McLaren)의 두 선수인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와 아일톤 세나(Ayrton Senna)가 기억된다.
맥라렌(McLaren)은 2009년 심각한 위반 행위를 포함해 아주 좋지 않게 시즌을 시작했다. 팀은 3위로 마무리를 했고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Lewis Hamilton)은 헝가리와 싱가포르 그랑프리를 우승하면서 선수권 챔피언십을 5위로 마무리했다. 헤이키 코발라이넨(Heikki Kovalainen)은 2009년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에서 실적이 저조한 12위를 하는 아주 실망스러운 성적을 기록하면서 2010년 시즌은 젠슨 버튼(Jenson Button)으로 대체되었다.

모두 영국인으로 구성된 이 팀의 2008년 챔피언 대 2009년 챔피언의 대결은 모든 F1 팬들을 위한 잠재적인 광경이다. 어떤 드라이버에 대한 주요 성과 지표들이 그 선수의 실력을 증명하는것이기 때문에 동료인 버튼(Button)과 해밀턴(Hamilton), 두 라이벌의 관계는 엄청난 압박감을 조성한다. 현재 누가 가장 유능한 영국 선수일까? 버튼은 비판을 잠재울 수 있을까?
맥라렌의 사실과 통계
맥라렌(McLaren)은 1963년 뉴질랜드 사람인 부르스 맥라렌(Bruce McLaren)에 의해 1963년 설립되었으며 43승을 얻은 팀으로 캐나다 미국 챌린지 컵(Canadian American Challenge Cup)Can-Am에서 가장 성공한 팀으로 알려져있다. 이것은 66년부터 74년까지의 기록이다. 66년도 모나코 그랑프리에서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이 직접 운전대를 잡고 시합을 뛰면서 팀은 데뷰를 했고, 68년 벨기에 그랑프리 이외에도 60년대에 그랑프리를 4개 더 받았다.
1970년 브루스 맥라렌(Bruce McLaren)은 Can-Am 시리즈 차량을 테스트하다가 사고로 사망하게 되었다. 팀은 테디 메이어(Teddy Mayer)의 지휘 아래 계속 활동을 했고 1974년에 에머슨 피티팔디(Emerson Fittipaldi)가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승리하게되면서 큰 성공을 얻게 되었고 그들은 팀 챔피언십까지 승리하게 되었다.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제임스 헌트(James Hunt)는 1976년에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우승하게 된다. 이 시즌은 페라리(Ferrari)팀의 니키 라우더(Niki Lauda)가 뉘르부르그링(Nurburgring)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끔찍한 사고로 아직도 기억되고 있다. 일본 그랑프리에서 헌트(Hunt)는 라우더(Lauda)의 은퇴로 인해 그보다 1점 많은 점수차이로 우승하게 된다.
1970년대 후반 팀은 분투하지만 젊고 역동적인 론 데니스(Ron Dennis)라는 리더는 팀의 운명을 다시 상승세로 바꿔놓았다. 데니스(Dennis)는 매우 재능있는 디자이너인 존 버나드(John Barnard)를 고용하게 되는데 그는 혁명적인 탄소 섬유 개발에 힘을 썼다. 데니스(Dennis)는 팀을 위해 강력한 재정 지원을 확보하고 1984년 니키 라우더(Niki Lauda0와 알랭 프로스트(Alain Prost)의 드라이버와 함께 팀 챔피언십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게 되었다(라우더는 드라이버 챔피언십 타이틀을 프로스트에게서 0.5점 차이로 획득하게 됨). 1985년에는 프로스트(Prost)가 라우더(Lauda)를 드라이버 챔피언에서 이기게 되고 팀은 챔피언십 우승을 하게 된다. 프로스트(Prost)는 1986년에 다시한번 우승을 차지한다.
론 데니스(Ron Dennis0는 1987년에 그의 전략적인 사고를 확실히 보여 주었다. 그는 엔진 공급 스위칭 및 파트너를 혼다로 바꾸고 프로스트와 함께 파트너로 일할 유능한 브라질인 아일톤 세나(Ayrton Senna)와 계약하게 된다. 1988년에 맥라렌은 16경기 중 15경기를 이기며 시즌을 독점했다. 결국 그들은 팀 챔피언십 우승을 하게 되고 세나는 드라이버스 챔피언십을 우승했다.
세나와 프로스트는 서로가 1등이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에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다. 두 사람은 모두 훌륭한 선수지만 각각의 매우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트랙 밖에서도 사이가 안 좋았는데 1989년에 둘 사이에 약속이 깨지는 바람에 산마리노의 그랑프리에서 세나와 프로스트가 스즈카에서 충돌했다. 그 이유로 그 시즌의 타이틀은 프로스트에게 넘어갔다. 그리고 팀은 또 다시 시즌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 이후에 프로스트는 페라리팀에서 이적하게 된다.
세나는 1990년과 1991년에 맥라렌 팀에서 다시 우승을 했다. 하지만 다른 팀들은, 특히 윌리엄스팀이 그 사이에 기능과 성능의 실력 차이를 많이 좁혀온 것이다. 그리고 엔진 공급 업체의 변경으로 맥라렌은 고군분투하며 헤매기 시작했다.
1995년 벤츠팀은 엔진 공급 및 성능을 향상 시키기 위해 시작한 몇 가지 드라이버 문제에도 불구하고 맥라렌의 지원자가 되었다. 1996년 애드리안 Newey와 같은 디자이너를 영입하여 기술감독으로 임명하고 미카 하키넨을 홍보 테스트 드라이버에서 기술 이사로 승진시킨 후 1998년에 드라이버와 팀 챔피언십 타이틀을 획득하였고, 1999년에는 2위를 차지하였다.
페라리의 미하엘 슈마허는 2000년과 2001년 그리고 2002년을 지배적으로 독점했다. 미카 하키넨을 넘어선 키미 라이코넨은 2003년에 미하엘 슈마허를 2점차로 이겼다. 하지만 2004년에는 미하엘 슈마허가 18경기 중 13경기를 우승하면서 다시 타이틀이 넘어갔다.
2007년도 시즌은 많은것을 약속했다. 더블 월드 세계 챔피언인 페르난도 알론소는 F1의 신인 드라이버인 루이스 해밀턴과 함께 팀에 합류하게 되었다. 보다폰은 메인 스폰서가 되어 상당한 펀드를 약속했다. 알론소와 해밀턴은 트랙에서 만났다. 둘 다 4경기씩 이기고 둘의 관계와 알론소와 팀과의 관계는 시즌이 지나면서 악화되기 시작했다. 알론소는 3등으로 마무리하였지만 라이코넨은 페라리를 운전하여 우승을 얻어냈다. 해밀턴은 문제가 많은 자동차로 경기를 차르게 되어 결국 7등을 하면서 그와 알론소는 109점으로 라이코넨 보다 1점 뒤진 점수로 마무리 하였다.
트랙 밖에서의 맥라렌은 라이벌 팀인 페라리의 기술적 정보를 얻어낸 것에 대한 죄명으로 인해 최악의 시즌을 보내게 되었다. 정부기관으로부터의 두 차례 청문회 후 팀은 챔피언십에서 실격되었다. 또한 추가로 미국 달러 1억불의 벌금형에 처하게 되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소득의 손실이었다. 맥라렌과 알론소는 서류상의 동의를 모두 파기하고 서로 재정 패널티를 지불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2008년 시즌은 다시 좋아졌다. 루이스 해밀턴이 마사(페라리)의 6경기 중 5경기를 이기게 되었다. 그러나 해밀턴은 약간 더 높은 기대치를 올리면서 마사보다 1점 높은 점수로 우승을 했다. 그는 9년 동안 F1 드라이버 챔피언십을 우승한 최연소 맥라렌 선수였다. 맥라렌은 팀 챔피언십에서도 2위를 기록했다.
2009년은 무엇보다도 라이게이트로 불리우는 여파의 영향으로 맥라렌이 주도했던 해였다. 팀의 간부와 해밀턴은 말레이시아와 호주 그랑프리에서 팀 관계자들에게 거짓말을 해야했다. 팀은 시즌을 3위로 마무리했고 간신히 페라리를 이겼다. 해밀턴은 드라이버 중에서 통합 5위를 기록했다.
맥라렌과 F1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 시즌 후반기에 일어났다. 벤츠팀이 첫 데뷰해 드라이버와 팀 챔피언십을 우승한 브라운GP를 인수하는 것이다. 이 인수는 벤츠가 2011년까지 맥라렌에서 40%의 지분을 빼앗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벤츠는 여전히 맥라렌에게 2015년까지 엔진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벤츠팀의 운영자인 로스 브라운의 힘은 그리드에서 아주 강한 조합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벤츠팀의 손실은 맥라렌에게도 영향이 있다.
2010년도 맥라렌의 가망성을 AFTERABC의 의견대로 풀어보자면
진실성에 대한 명예, 스포츠맨십 그리고 정직함을 얻으려면 오랜시간이 필요할것이다. 하지만 이런것들이 파괴되는 것은 한 순간이다. 팀이나 드라이버에게 스포츠의 이득과 타당한 이유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말이다. 정당성을 더럽히려는 생각이나 결과는 타당할 수 없다. 물론 이런것들이 FIA의 규정에 어긋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F1이라는 스포츠 자체의 믿음이 깨지는 일인 것이다.
맥라렌이 페라리를 스파이했다는 이유로 1억 달러의 벌금을 FIA에게 지불해야 하는 결과를 안았다. 2007년의 팀 포인트는 모두 박탈되었고, 오래된 팈의 역사에도 먹칠을 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맥라렌팀에게 큰 손실을 가져다 주었다. F1의 압박은 시작되어 많은 사람들이 맥라렌의 재정난에 대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다. FIA는 타당한 벌칙과 큰 액수의 벌금을 부과함으로써, 맥라렌같은 큰 팀은 꼭 필요하지만 이기기 위해서 정당성을 무시한 행동에 대한 결과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FIA는 맥라렌팀이 지속적으로 경기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FIA가 내린 엄청안 금액의 벌금은 팀이 보여준 좋지 않은 태도와 자세를 바로잡아 주는 역할을 한것 같다. 아쉽게도 2009년의 맥라렌은 스포츠의 예의를 완전히 무시한 사건이었다.
2009년도 경기 이전에 호주에서의 루이스 해밀턴은 젊고 유능한 선수라는 아주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페르난도 알론소와의 분쟁은 두 선수의 자존심 대결이었고 두 드라이버를 모두 비난해야하는 상황이었다.
2008년도 해밀턴의 세계 드라이버 챔피언십 승리는 확실히 잠재해 있는 그의 훌륭한 운전 실력을 입증하는 대회였다.
해밀턴이 경기 관계자들에게 했다고 알려진 "라이게이트"라는 거짓말은 팬들에게 큰 실망감을 주었고 다시한번 맥라렌팀의 정직성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라이게이트의 배경은 호주 그랑프리 경기 도중 사고가 일어났고,세이프티카가 투입되었다. 야르노 트룰리가 3등으로 달리는 상황이었고 커브에서 간단히 도로 경계석을 넘어가게 되었고 해밀턴이 그를 지나치게 되었다. 이것은 정당해 보였다. 맥라렌팀은 해밀턴이 트룰리를 지나간것은 세이프티카가 포메이션 상태였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해밀턴은 지시에 따르게 되고 맥라렌팀은 실수를 인정하게 되었다. 그래서 경기가 끝난 후 관계자들에게 트룰리가 의지와 상관없이 단독적이고 불법적으로 해밀턴을 추월했다고 했다. 경기 관계자들은 액면 그대로 해밀턴의 말을 듣고 스포팅 관리자인 데이브 리안에게 세계 챔피언 드라이버 및 스포츠 감독은 경주 공무원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덕분에 아무 죄없는 트룰리는 25등 이라는 패널티를 받게 되었다. 이것은 그를 3위에서 12등까지 추락시킨 것이었다. 반면에 해밀턴은 4위에서 3위로 오르게 되고 포디엄 자리까지 획득했다.
레이스 관계자들은 무엇인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비디오 및 라디오 메시지의 테이프 녹음을 통해 완전한 증거를 찾아냈다. 그리고 라디오 전송 기록도 발견했다. 이것은 분명히 해밀턴과 리안이 거짓을 말했다는 증거이다. 그 후에 론 데니스는 맥라렌팀에 대한 권한이 모두 박탈되었다(참고로 데니스는 날마다 맥라렌팀에서 뒷걸음치고 있다고 시즌 초반에 발표했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해밀턴은 그가 거짓말 했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 FIA는 맥라렌팀에게 3일 경기 정지 벌칙을 주었다. 벌칙명은 스포츠 정신을 존종하지 않았고 호주와 말레이시아 그랑프리에서 레이스 관계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해밀턴의 주역이 내세운 변명은 그가 어려서 그랬다는 어처구니 없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는 13살 어린이도 아니었고 월드 챔피언이라는 자리에 올라갔던 사람이었다. 이것은 경기의 열기속에 나왔던 내용이 아니라 경기 이후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예전의 영국 챔피언이었던 호손(Hawthorn),그레이엄 힐(Graham Hill),클라크(Clark),시티스(Surtees),스튜어트(Stewart),헌트(Hunt),만셀(Mansell), 또는 데이먼 힐(Damon Hill)이 레이스 관계자들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속일것이라는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간은 흘러가고 해밀턴은 다시 그의 추락한 이미지를 회복해야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그의 매니저를 교체하는 것이었는데 그의 결정에 도움이 되는 사람들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나이와 경험으로는 관계자들에게 거짓말을 하느냐 안하느냐 정도의 결정을 내리지 못할 나이는 아니었다.
론 데니스는 팀의 상승과 홍보로 팀의 부흥을 이뤄내 많은 신뢰를 얻게 되었지만 아쉽게도 도덕적인 문제로 팀의 이미지는 좋지 않게 되었고 그가 책임을 지고 떠나게 되었다. 맥라렌팀의 어둠은 이제 끝이나고 다시 규정과 열정을 갖고 승리하는 팀이 될 수 있다면 의혹을 품은 사람들이 신뢰감을 구축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젠슨 버튼이 벤츠팀인 브라운(지금의 메르세데스)를 떠나야겠다는 결정을 내렸을 때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했다. 그는 맥라렌팀에 해밀턴과 동료의 관계로 합류하게 되었다. 젠슨은 항상 챔피언이 될 수 있는 운전 실력을 가지고 있느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대답하지 조금은 힘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관점에서는 그런 질문 자체가 쓰레기이다. 젠슨은 아주 훌륭한 선수이다. 그는 놀라운 능력으로 매우 부드럽게 운전할 수 있으며 그는 멋진 대사와 챔피언이 될 것이며, 그의 타이틀을 지키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는 선수이다. 젠슨(로스버그 대신)이 벤츠팀에 계속 남거나 아니면 페라리의 마사 선수 대신에 교체 되길 바란다. 그는 아마도 그의 뛰어난 재능을 모두 발휘할 수 있는 지원을 받게될 것이다.
AFTERABC에서는 루이스 해밀턴과 젠슨 버튼을 동일한 4순위의 드라이버라고 판단한다. 해밀턴이 팀에서 버튼보다 많은 지원을 받게 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 결과로 버튼을 넘어설 수도 있다. 하지만 버튼이 동일한 조건으로 해밀턴과 경쟁을 하게 된다면 아마 시즌 동안에 팽팽한 경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맥라렌은 우리가 생각하기에 시즌에서 세 번째로 최고의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팀 챔피언십에서 두 명의 선수 모두가 마무리 점수를 획득하여 2위 아니면 3위를 할 것 같다. 시즌 동안에 버튼과 해밀턴은 4위와 5위 정도로 예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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